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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외 생명체보다 흔한 존재? 극한 환경 미생물 이야기

by 머니생활IN 2025. 7. 17.

지구 외 생명체보다 흔한 존재? 극한 환경 미생물 이야기
지구 외 생명체보다 흔한 존재? 극한 환경 미생물 이야기

상상조차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

지구에는 사람이 발을 들이기조차 어려운 환경이 무수히 많다. 불타는 화산 속, 영하 수십 도의 빙하, 엄청난 수압이 가해지는 심해, 심지어 강한 방사선이 퍼지는 원자로 근처까지.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극한의 장소들에서도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가 존재한다. 바로 ‘극한 환경 미생물(extremophiles)’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극한 환경 미생물이 처음 발견된 건 1960년대 후반,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온천에서였다. 물이 끓어오르는 70~90도의 온천 안에서도 살아 있는 세균들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과학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40~50도만 돼도 생명체가 살아가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탐사가 이어지며 다양한 극한 환경에서 미생물들이 발견됐다. 영하 20도 이하의 남극 빙하 속에서 번식하는 박테리아, pH 1에 가까운 산성 호수에서 살아가는 고세균, 심해 3,000m에서 고온·고압 조건을 버텨내는 미생물들까지. 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춰 특화된 효소, 독특한 세포벽 구조, 독립적인 에너지 대사 방식 등을 통해 생존해왔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미생물들은 태양빛이 전혀 닿지 않는 환경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광합성에 의존해 살아가는데, 이들은 빛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도 ‘화학합성’이라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든다. 즉, 주변에 존재하는 황, 철, 수소 등의 무기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런 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한다면, 외계에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외계 생명 연구에 단서가 되는 존재

과학자들이 극한 환경 미생물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신기해서가 아니다. 이들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지구의 온화한 환경만이 생명의 유일한 조건이라는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령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나 토성의 ‘엔셀라두스’처럼 두꺼운 얼음 밑에 바다가 존재하는 천체들이 있다. 예전에는 이런 환경에선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봤지만, 극한 미생물의 존재를 통해 '바닷속 화학반응만으로도 생명이 가능하다'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화성의 토양 속에 존재하는 과산화수소, 메탄, 염류 등은 보통 생명체에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 고세균은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능력을 보인다. 실제로 지구에서는 방사능이 강한 지역에서도 서식하는 미생물이 발견되었고, 이들은 DNA 복구 능력이 탁월하다. 그렇다면 화성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2020년대 들어서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주생물학(Astrobiology)’이라는 분야도 주목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 발견된 유전자를 바탕으로, 외계에서도 생존 가능한 생명체 모델을 만들고 있다. NASA나 ESA(유럽우주국)도 이와 관련된 탐사 계획을 추진 중이며,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진지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망원경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지구라는 실험실 안에서 답을 먼저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극한 환경 미생물은 그런 점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외계 생명의 힌트일 수 있다.

일상생활과 산업에도 활용되는 극한 생물

극한 미생물이 가진 능력은 단지 학문적인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생존 방식과 생화학적 특성은 의외로 우리 일상과 산업 분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타크폴리머라아제(Taq polymerase)’라는 효소다. 이 효소는 온천 속 고온 세균에서 추출된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코로나19 검사를 비롯해 다양한 유전자 검사를 할 때 필수적으로 쓰이는 물질이다. 높은 온도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는 이 효소 덕분에, 유전자 증폭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 기술 없이는 PCR 검사가 불가능하다.

또 하나, 극한 환경 미생물은 오염물 정화에도 쓰인다. 일부 미생물은 금속이나 기름, 플라스틱 같은 독성 물질을 분해하거나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환경 정화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하수 오염 정화, 공장 폐수 처리, 심지어는 원자력 폐기물 분해까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최근에는 이들의 효소를 식품이나 화장품 산업에도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고온·고압에서도 안정적인 단백질 구조는 가공식품 생산에 유리하고, 일부 미생물에서 유래한 성분은 피부 노화 방지나 염증 완화 효과까지 보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미생물들이 여전히 다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심해, 빙하, 사막, 염전 등지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작은 현미경 아래 숨어 있던 이 존재들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른다.


한때 사람들은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태양빛이 없어도, 산소가 없어도 생명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게 과학의 새로운 관점이다.
그 출발점에 바로 극한 환경 미생물이 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생명, 그리고 우리가 아직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
어쩌면 외계 생명체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