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트는 공상과학일까, 과학일까?
"순간이동"이라고 하면 보통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A 장소에서 B 장소로 ‘퐁’ 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장면.
스타트렉, X맨, 마블 영화 같은 데서 흔히 등장하던 장면이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아직까지 영화 속 상상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양자 순간이동(Quantum Teleportation)’이라는 개념은 실제 물리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실제 과학적인 개념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순간이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이 통째로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입자의 ‘정보’가 순간적으로 이동되는 현상이다.
그 중심에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있다.
양자 얽힘이란, 두 개의 입자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된 상태를 말한다.
하나의 입자에 변화를 주면, 다른 입자에도 동시에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지어 그 거리가 수십,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두고 "유령 같은 원격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양자 얽힘은 실험을 통해 여러 번 검증되었고, 2022년에는 이 현상을 연구한 세 명의 물리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양자 얽힘을 기반으로, 특정 입자의 정보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기술이 바로 양자 순간이동이다.
양자 순간이동의 작동 원리: 말장난이 아니다
양자 순간이동은 얼핏 보면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다.
입자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복사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동이 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정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입자의 상태(스핀, 방향, 위치 등)를 다른 B 지점에 있는 입자에 그대로 '복사'하고 싶다고 해보자.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복사가 불가능하다.
양자복제 불가능성이라는 원리 때문이다.
대신, A와 B가 사전에 얽혀 있는 상태라면, A 입자의 정보를 '측정'하고, 이 측정값을 통해 B 입자의 상태를 A와 동일하게 ‘바꿔주는’ 방식으로 정보를 이동시킬 수 있다.
이게 바로 ‘순간이동’이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A 입자는 원래의 상태를 잃는다는 것이다.
즉, A 입자의 정보가 소멸하고, B 입자에 재현되는 것.
정확히는 ‘전송’이 아니라 ‘복원’ 혹은 ‘재구성’에 가깝다.
이 과정은 일반적인 통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며, 중간에 제3자가 정보를 가로채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 기술이 왜 중요한지는 양자 컴퓨터나 양자 네트워크 분야에서 잘 드러난다.
양자 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력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만큼 데이터의 보안과 전송도 민감하다.
여기서 양자 순간이동은 오차 없이 정보를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실제로 2020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가 22킬로미터 거리의 광섬유를 통해 양자 순간이동을 성공시켰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물리실험을 넘어서, 미래의 통신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사람도 언젠가는 순간이동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가장 궁금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 언젠가는 인간도 순간이동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론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은 단순한 입자가 아니라 약 37조 개의 세포, 그 안의 수천억 개의 분자와 원자, 그리고 복잡한 신경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 순간이동은 하나의 입자나 광자의 정보를 이동시키는 데만도 엄청난 정밀함이 필요한 기술이다.
그런데 사람 전체를 순간이동시키려면, 몸 안의 모든 입자를 하나하나 측정하고 그 정보를 저장한 뒤, 동일한 상태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건 현재 기술로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둘째, 정보의 양이다.
예를 들어 사람 한 명을 완벽히 순간이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보의 양은, 어떤 계산에 따르면 **10^28 비트(10의 28제곱)**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 정도 데이터는 현재 지구상의 모든 저장장치를 총동원해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정보를 전송하는 데만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윤리적 문제도 있다.
양자 순간이동은 원본이 파괴되고 복제본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순간이동 후의 나는 ‘나’일까? 아니면 '나를 복제한 또 다른 존재'일까?
자아와 의식의 연속성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인간의 순간이동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양자 순간이동 기술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기술은 양자 인터넷, 초고속 보안 통신, 양자 컴퓨터 간 정보 연결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실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고전물리학의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그 틀을 무너뜨리는 개념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양자 얽힘’이나 ‘양자 순간이동’ 같은 개념들은 처음 들으면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실험실 안에서 구현되고, 지금도 전 세계 과학자들이 발전시키고 있는 현실의 기술이다.
비록 우리가 영화처럼 사람을 순간이동시킬 수는 없지만, 정보의 세계에서는 그 첫걸음을 이미 내디뎠다.
누군가의 말처럼, 미래는 상상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은 때로, 양자처럼 순간적으로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