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물질
"영구기관"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불가능한 이상으로 여겨졌다. 아무런 에너지 공급 없이 스스로 계속 움직이는 물체라니,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운 열역학 제1·2법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미국 UC버클리의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이 이 불가능할 것만 같던 개념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시간 결정(Time Crystal)'이라는 이론적 존재를 제안하며 물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시간 결정이란 쉽게 말해 시간 축을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 운동을 하는, 즉 '영원히 움직이는' 상태의 물질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결정(crystal)은 공간적으로 원자들이 주기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반면 시간 결정은 이 공간적 주기성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물리적 상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를 지닌다. 더 흥미로운 점은, 외부에서 별도의 에너지를 주지 않아도 이 반복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처음에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론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2016년 구글과 여러 과학자들이 참여한 연구팀이 초전도 큐비트를 활용해 실험실에서 시간 결정 상태를 구현해냈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여러 물리학 연구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 결정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해가는 중이다. 마치 영화 속 상상이 실현되는 듯한 순간이다.
시간 결정을 통해 '시간 조작'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시간 결정’이라는 개념을 들으면 곧바로 떠올리는 것이 있다.
“그럼 시간여행이 가능한 거야?”
“시간을 멈출 수 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방식의 시간 제어와는 좀 거리가 있다.
시간 결정은 **시간 축에서의 '대칭성 자발적 파괴(spontaneous symmetry breaking)'**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물리 법칙은 시간이 흘러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시간 결정 상태에서는 물질이 이러한 시간의 대칭성을 스스로 깬 채, 주기적인 운동을 반복한다. 마치 원래는 매끈하게 이어져야 할 시간의 흐름에 '리듬'이 생긴 것과 같다.
이러한 특성은 양자역학 수준에서 매우 흥미로운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에너지를 주지 않아도 움직임이 계속 반복된다거나, 외부의 교란이 있어도 일정한 패턴이 유지되는 식이다. 이는 향후 양자 컴퓨터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즉, 시간 결정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실제 기술적 활용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걸 시간여행이나 타임루프 같은 개념과 바로 연결짓는 건 무리다. 시간 결정을 통해 시간의 방향이나 과거·미래를 넘나드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물질이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형성하며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존의 시간 개념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는 대단히 의미 있는 발견이다.
미래 기술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
시간 결정은 지금 당장은 일상생활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보면, 이 개념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양자 컴퓨터와의 연관성이 자주 언급된다.
현재 개발 중인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라는 단위로 정보를 처리한다. 문제는 큐비트가 외부 환경에 굉장히 민감해서 쉽게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때 시간 결정의 ‘지속적인 운동과 패턴 유지’라는 특성이 에러를 줄이고, 시스템을 더 안정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간 결정은 양자 정보의 지속성 유지 수단으로 기대받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시간 결정이 물리학 이론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간이라는 개념을 ‘직선적이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만약 어떤 물질이 시간의 흐름을 스스로 재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시간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개념이 다시 쓰여야 한다는 얘기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건 단순한 실험 결과가 아니라, 우주의 구조를 보는 새로운 렌즈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철학적인 질문도 던지게 된다.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변화하는 물질의 상태가 시간인가, 아니면 시간 자체가 독립된 실체인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시간 결정은 단순한 과학 개념을 넘어서 철학, 우주론, 기술의 경계선에 서 있는 주제가 된다.
시간 결정은 현재까지는 연구실 속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존재다. 지금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지 몰라도, 언젠가 '시간 결정'이라는 개념이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양자인터넷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자리 잡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시간을 처음으로 다시 쳐다본 순간'**일 수도 있다.